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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홍수 석정희

sukchonghee 2015. 8. 14. 09:32

문학세계 17호(2006년겨울) 에서

                      강과 바다 속을 유영하는 詩魚들
        
                                                                (시인 평론가)  박영호

시 / 홍수    석정희

다음은 홍수라고 하는 강물을 통해서 자연의 위대한 힘에 대한 경이로움과 그 힘을 잠그는 일종의 힘의 절제나 조화를 통해 파괴와 매몰의 의미가 아닌 또 다른 생명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개혁과 지혜의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물의 힘인 홍수는 뒤덮고 부수고 쓸어가기도 하지만, 이를 스스로 잠재우고 잠그고 스며드는 것도 역시 물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숨어있는 묵시적(默示的)인 힘인 사막에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게 될 생명의 힘라는 것이다.

말랐던 사막에 비 내려
거센 물살 온 들을 뒤덮고
넘치며 부수고 쓸고 가
길은 길대로 열리는
너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물 밑으로 잠그는 힘, 바람이여
바람이여 황토빛 이미지로
삼켜버리는 물의 힘이여                           < '홍수' 전문>

  우선 홍수라고 하는 강물을 통해 사막이라고 하는 비 생명적인 죽음의 황량한 땅에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강물의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표현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홍수의 힘은 사막을 뒤덮는 파괴의 힘만이 아닌, 스스로의 힘까지도 스스로 다스리는 자연의 보다 근원적인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홍수의 힘은 사막을 뒤덮는 그 물리적인 파괴의 힘만이 아닌, 스스로 밑으로 잠기고 삼켜버리는 그래서 노아의 홍수처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세계를 불러 일으키는 부활과 재생의 힘을 암시하고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막에 새롭게 길을 내고 흐르는, 그래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꽃을 피우게 하는 자연의 생산적 열정이 바로 사막의 강물인 홍수란 것이다. 그럼으로 사막과 같을 수도 있는 우리의 지친 삶이나 고통도 그리고 그릇된 사회의 모습도 홍수라고 하는 큰 개혁의 힘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나 재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개혁과 재활의 힘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자연의 파괴적인 물리적 힘까지도  '밑으로 잠그는' '삼켜버리는 힘' 등의 반어적(反語的)인 표현을 통해서 다음에 떠오를 연상(聯想)의 세계를 독자에게 안겨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상의 세계는 당연히 사막에서 다시 꽃이 피고 다시 만물이 살아나는 새 생명과 부활의 모습일 것이다.
다음의 시는 이 시와 함께 실린 그녀의 또 다른 강물의 시다


건너에 두게 하는 강


그 강을 건너고 싶다.                              ('강'의 전문)

이 시 역시 시인 개인의 강을 이원적으로 구성해서 현실과 피안 그리고 너와 나를 이분법으로 구분해서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을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너와 나 사이를 흐르는 강은 현실의 강처럼 내가 건널 수가 없다. 그러나 시인이 '그 강을 건너고 싶다' 는 소망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마음 속에 흐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소망이라는 마음의 강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강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강을 통해서 피안이라고 하는 이상의 세계에 이르고 싶은 개인적인 꿈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가 남다르게 눈길을 끄는 것은 시가 특별하게 짧고, 시의 구성 역시 3.5조에 의한 음조의 배치가 마치 '양장 시조'의 형식이나 고국 남도에서 유행되고 있는 '두줄 시'와 가까운 단순한 구성으로, 압축과 생략 이라는 시의 근원적인 특색을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