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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문 앞에서 석정희

sukchonghee 2015. 8. 14. 09:31

<평론> 해외문학 10호(2006년겨울)에서

   바다 건너에서 꽃 피는 는 모국어의 꽃
-그래도 꽃은 아름답고 별은 여전히 신비하다. -    

                               (시인 평론가) 박영호

시/ 문 앞에서    석정희

다음은 이러한 현실의 삶이나 힘들고 외로운 이민의 삶을 민요적인 리듬으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포근한 위안과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하는 여성 특유의 정서로 표현된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있다. 바로 석정희의 '문 앞에서' 이다

나 여기 있습니다
거리의 먼지 뒤집어 쓰고
돌아온 나 여기 있습니다

기다리는 그림자
창에 비쳐 잰 걸음으로 왔습니다

떠돌던 먼 나라의 설움에
눈물 섞어 안고 나 여기 와 있습니다

어둠 속 머~언 발치서
아직 끄시지 않은 불빛을 따라
나 여기 와 있습니다                                    
                                                              '문 앞에서' 전문 『미주시인』2005 여름

소월의 시가 오늘날까지도 애송되고 있는 것은 그 시에 심오한 뜻이나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라 가장 손쉬운 우리말의 숨결과 가락이 실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 시 역시 단 한 마디의 한자어도 섞이지 않은 순 우리말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색이고, 표현된 리듬 역시 구어체에 의한 반복 표현으로 정형시에 가까운 리듬으로 균형 있게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일상적인 손쉬운 어휘와 유연한 리듬의 숨결로 표현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소월의 시가 그렇듯이 이처럼 손쉬운 언어와 손쉬운 리듬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얼핏 보면 시의 내용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와는 달리 내용은 극히 사색적이고 힘겨운 생의 고통이나 이민 생활에 대한 깊은 고뇌와 함께 미래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경건한 삶의 자세가 잘 표현되고 있다.  더욱이나 이러한 내용이 매우 사려가 깊고 단아한 한 여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여성적인 어법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어서,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적 삶의 세계가 극히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순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인이 찾아가는 '머언 발치의 불빛' 이라는 시의 대상이 결국 시인이 찾아가는 생의 참된 가치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구체적 대상이 한 개인의 절대적 사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고향일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온 생애를 두고 찾아가는 꿈의 불빛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세상에 지치고 낙담한 나머지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머금고 찾아가는 신을 향한 구원과 영혼의 불빛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시란 거의 모두가 시의 내용이 단일한 대상이 아닌, 여러 형태의 의미가 은유적으로 포함된 일종의 복합적인 함축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리의 먼지 뒤집어 쓰고/ 돌아온 / 나 여기 있습니다' 의 표현에서  '돌아온' 이란 인생에 대한 회환과 달관을 표현한 점이나,  '떠돌던 먼 나라의 설움에/ 눈물 섞어 안고/ 나 여기 와 있습니다 ' 에서  '눈물 섞어 안고' 라는 절묘한 표현은 가히 시적 표현으로는 다시없이 뛰어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읽어도 실증이 나지 않는 시, 그래서 늘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 이러한 시가 결국은 좋은 시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시가 바로 시의 생명이 긴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