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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교수/석정희2시집 발문 "나 그리고 너"

sukchonghee 2015. 8. 16. 08:31

<발문>

이 외로운 세상에서 꽃을 피우는 일

이 승 하
(시인․중앙대 교수)


  석정희 시인의 제2시집은 제목 그대로, 대타관계의 개선에 바쳐진다. “이 세상은 바다/ 모든 사람은 섬이 되어 산다”고 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현대인은 누구나 고해苦海에 떠 있는 섬이다. 그것도 절해고도絶海孤島이다. 도시문명은 인간을 가옥 혹은 건물이라는 벽 속에 가둔다. 농경사회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육체노동을 했지만 지금은 각자가 컴퓨터 앞에서 침묵 속에 정신노동을 한다. 공동체의 일원인 때는 거의 없고 자신만의 방에 유폐되어 있는 외로운 수인囚人이다. 진정한 친구나 말이 통하는 동료가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석 시인은 시로써 타인에게 대화를 청한다.

  서로 닿지 않는
  별로 떠서
  슬픈 짐승이 되고
  하늘 향해 우짖어 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허공만을 채우는
  숲에서 구슬을 찾고 있다
                           ―「서로 다른 밤에」 끝부분

  숲에서 구슬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시인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관계의 개선, 나아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리라. 이해와 배려는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남’인 타인과의 소통도 꿈꾸지만 시인은 시를 쓰면서 부모님의 은혜에 새삼 고마워하고 못 다한 효도에 가슴아파한다. 절대자를 향해 애타게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기독교적인 세계 인식으로 시를 쓰면 종종 교훈성을 지녀 시적 매력을 잃기도 하는데, 석정희 시인의 시는 특유의 간절함이 감동을 준다. 다만 기도조의 시는 평화와 안정의 세계를 벗어나 고뇌와 갈등의 골짜기를 더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 세상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곳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아름다운 곳이지만 비극은 우리 발밑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이 택한 길이 있으니 바로 이타적 삶이다.

  향긋한 향기는 바람에게 주고
  달콤한 꽃술은 벌에게 주고
  붉은 꽃잎들은 땅에 주네
                           ―「나는 꽃」 부분

  사랑을 베풀고 베풀고 또 베푸는 과정에서 나는 꽃이 되는 것이다. 미움보다도 사랑의 전파력이 훨씬 강하다. 나의 이타적인, 실천적인 삶이 그 언젠가는 이 세상을 조금은 더 밝게 할 것이다. 더욱더 향기롭게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번에 내는 시집의 큰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인은 줄기차게 진리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이런 결심이 아래의 시를 쓰게 하였다.

  어느 날 서럽게 울다가
  어제의 꿈과 눈물로
  어렵게 피어나

  이제야 향을 뿜는
  이 꽃 한 송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끝내 피어낸
  끝없는 정성 모두어
  끝까지 가리라
                           ―「한 송이 꽃 (1)」 부분

  “끝없는 정성 모두어/ 끝까지 가리라”는 말은 일종의 다짐이다. 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시로써 꽃을 피워내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시편으로 읽었다. 눈물, 즉 시련이 있었기에 꽃은 향기를 뿜을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석정희 시인은 한국에서 살 때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후로도 세파에 시달리느라 시의 밭을 일굴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늦깎이로 Skokie Creative Writer Association에 영시로 등단하고 두 군데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받은 이후 그녀의 시 쓰기는 가속도가 붙는다. 늦게 출발하였기에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간 우화 속의 거북이것처럼, 그녀는 지금 시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국의 여러 문인단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부지런히 시를 써 2008년에 제1시집 ?문 앞에서?를 냈고, 제4회 한국농촌문학상 해외특별대상과 한국문학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시집을 2권 공저로 내어 한국시의 위상을 미국 시단에 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석정희 시인은 출발선상을 떠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 반환점까지도 아지 멀었고, 오르막길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 모든 시련이 그녀의 시를 향기롭게 하는 데 모종의 역할을 할 것임을 믿는다. 미국에서 한글과 영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지독한 모국어 사랑, 조국 사랑의 몸짓인 것을 알기에 그녀의 작업이 앞으로 더욱 향기로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