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초상(肖像) / 석정희
바람의 얼굴 본일 없이 그 얼굴 그려 본다
굽이 돌아 골목 훑고 지나다가
가로수라도 만나면 잎새마다 얼굴 그려내며
꽃으로 숨어 있다가 빛깔 풀어내고
그 색깔마다에 눈을 달고 내달아 간다
잎새 하나 하나마다 그려지는 얼굴의
본색 드러내는 바람에 묻어 오는
눅눅하게 젖은 우수도,까칠하게 모래 품은 바람
자다 깨다 오늘을 지나는 일
천연덕스레 나무에 달려 표정 짓지만
얼굴은 얼이 통하는 통로라 하지 않나
하늘 보아도 땅을 보아도 보이지 않던 바람
길가에 선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이런저런 모습 드러내는 저녁 무렵
박쥐 뛰어나르는 사이로 땅거미 어른거리면
벽돌담 위의 가시철망도 뚫고 지나
벽에 가 부딪쳐도 다시 나뭇잎새에 엉겨
야누스의 얼굴로 희죽대는 잎새마다의
얼굴이 되어 할퀴고 지나가 버리는
그 사람들의 바람끼 꽃을 쓰러뜨리고
골목마다 나뒹구는 꽃잎 하나 하나 어둔 빛에 묻힌다
상념을 털고 바람의 얼굴 보러 바다로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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